I Think

사진사(寫眞史)를 배운다

강갑준 2007. 4. 28. 14:14

나는 정상적인 사진 교육을 받지 않았다. 다만 대학 사회교육원 전문 사진반을 수료했을 뿐이다. 그리고 공모전을 통해...직업적인 일 때문에 사진을 시작했다. 그러니 사진사는 백지상태. 보도사진을 찍으면서, 최민식 선생님을 알게 된 것도 그런 연유(緣由)라 할까. 그 분에 대한 취재를 한번 했다. 인터뷰서 ‘선생님은 사진 동기를 일본 어느 서점에서 /에드워드 스타이캔/의 ‘인간 가족’이란 사진집을 보고 나서 부터였다‘고 말했다. 그 당시는 그렇겠지, 전연 무관심 이였다....,

나이 들어선지, 유명한 사진예술가 들 생애가 어떠했는지를 알아야 겠다는 생각에 자료를 조사, 그래도 이것만은이라도 꼭 기록해두어야 겠다고 생각 이 글을 쓴다.


먼저 최민식 선생님께 사진동기를 부여한 것으로 알려진 /스타이캔/에 대해서, 그리고 그 다음엔 /앙리 까르띠에브레송/을 쓸려고 한다.


/에드워드 스타이캔/(Edward Steichen, 1879~1973)/은 1879년 3월 룩셈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생후 18개월이 되던 때 양친과 함께 미국에 이민하여 유년 시는 신문배달과 야채행상 등으로 고학을 했다. /스타이캔/의 사진이 처음으로 인정을 받게 된 것은 1898년 필라델피아사진 살롱에 출품함으로써였고, 뒤이어 1900년 런던왕립(王立)사진협회에서 개최한 미국 사진계 신경향전(新傾向展)에 출품하여 작가로서의 기반을 굳혔다.

/스타이캔/는 사진과 그림을 본격적으로 공무하기 위해 1902년 파리로 건너갔다. 이때 파리에서 처음으로 개인전을 열었고 /스타이캔/은 유명한 조각가/로댕/과 친숙해지고 /로댕/의 초상을 그의 조각과 함께 배열, 로맨틱한 무드로 찍어서 호평을 받기도 했다. 이 때 찍은 사진, /들이 /카메라 워크/지상에 소개되자 당시 유명한 미술 평론가인/ 찰스 H가빈/이 격찬, /스타이캔/은 금방 유명해졌다. 이때부터 /스타이캔/은 미국의 저명인사들의 인물사진을 찍게 되었고 또한 상상(尙像)사진가로서의 위치를 확고하게 굳히기 시작했다.

/스타이캔/은 1902년을 기해서 자기가 20년간 그린 모든 그림을 몽땅 불태워 버리고 사진만을 전공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마침 전쟁을 통한 사진에 대한 새로운 의식을 갖게 되었다. 즉 사진은 질감묘사가 그 생명이라고 느낀 나머지 질감묘사의 수업을 철저히 하기 위해서 그는 한 개의 접사사진을 몇 십번이나 찍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와 같은 새로운 사진적 표현을 시도한 /스타인캔/은 새로운 기술을 구사하여 대상의 리얼리티를 극한으로 하는 세밀한 묘사의 수법으로 상업사진의 영역에 까지 파고들었으나, 1923년 콘티디스트社의 사진부장으로 일하면서 크게 성공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스타이캔/이 남긴 무수한 작품 가운데 특히/포토레이트/는 20세기 전반에 있어서 가장 뛰어난 고전으로 평가되어 사진사를 장식했고 또한 근대패션사진의 예술성을 확립한 선구자이기도 하다.

1954년 그가 뉴욕근대미술관 창립 25주년을 축하하기 위해서 기획한‘인간가족(人間家族/은 한마디로 /스타이캔/이 남긴 모든 작품들이 빛을 잃고 소멸해 버린다해도 이 인간가족전만은/스타이캔/의 작품으로서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이 유명한 인간가족전은 고 임응식(林應植)씨의 주선으로 1957년 4월3일부터 28일까지 25일간 서울 경복궁 미술관에서 개최되어 당시 관람자가 무려30만 명에 달했고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