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Think

아! 봄이 오는가…섬진강

강갑준 2005. 3. 21. 18:37

퍼가도 퍼가도 핏줄같은 아름다움이 다물어지지 않는 섬진강, 개울물이 끊이지 않고 모여 흐르며 삶에 찌든 사람들을 하루 종일 불러 모은다. 봄은 올까말까 걸음을 재며 심술 부리는데 사람들은 봄내음을 맡고싶다는 성급한 욕망으로 남녘을 헤맨다.
봄아! 섬진강에 꼬리만 살짝 담궜느냐? 생기 넘치는 물살과 반짝이는 물결의 흔들림을 하동 입구에서 마주한 우리들은 봄의 생명력을 기대하며 설레였건만.... 아직 이르다, 아직 이르다며 쉽지 않은 봄의 산고만 확인한다. 허나 봄의 잉태를 목격하였기에 다음을 기약하는 것이다.


20일 아침 6시 경 부산을 출발해 섬진강 ‘산동마을’을 경유해 ‘운조리 고가’ , 부산 '내고장 민주공원' '천마산 부산야경'까지 사진 촬영을 하였다. 예년에 비하면 아직 봄은 저멀리이나 섬진강을 지나 산수유 마을로 가는 길목과 매화 축제로 향하는 승용차가 꼬리를 물며 북새통을 이루었다.

역시 봄은 그렇게나 좋은건가. 그토록 그리웠던가. 봄소식을 모른채 늘어선 손님들은 밀리는 길가에서 하품만 한다. 어리석은 인간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산기슭을 수놓고, 봄기운 대신 차량들이 섬진강을 덩실거리게 한다.

봄꽃을 만나고 싶은 이들, 여유로운 휴식을 찾아 나선 사람들의 바람은 무참히 날아간다. 어떤 이들은 셔틀버스를 타고서라도 매화축제에 가고(주최측에서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마련함), 또 누군가는 몰려든 인파에 놀라 꽃내음 맡지도 못한채 발걸음을 되돌린다.

이처럼 섬진강과 봄은 가깝고도 멀다. 보통 3월 10일 이후로 섬진강변에 매화, 산수유가 피어 봄맞이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데, 올해는 봄이 내음만 낼뿐 형체를 알 수 없다.

산수유는 미동도 없고, ‘활짝 핀’이란 말을 붙일 수 없는 매화 또한 애간장만 녹인다. 꽃을 내밀었다가 뜻밖의 냉해(?)를 만난 탓인지 올해 매화는 왠지 애처롭기만 하다.
흙은 촉촉해지고, 뒤이어 필 꽃들이 조용히 꽃망울을 키우고, 물오른 나뭇가지가 에워싸며 말없이 응원해주기에 언땅에 스스럼없이 피어났던 매화가 아니었던가. 응원 없이 홀로 핀 매화들의 외로움이 또한 아프다.


거리엔 ‘매화축제’ ‘산수유 축제’를 알리는 헌수막이 거짓스럽게 나붙어 있고, 묵묵히 그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굽이 굽이 돌고 도는 섬진강, 물소리만 검푸르게 들린다. 눈요기인 섬진강 낙배는 보이지 않고 이곳저곳을 연결한 밧줄만 시선을 모은다. 그 유명한 재첩 캐는 배도 보일만 한데 아직 봄이 저만치여서인지 보일 기미가 없다. 녹차밭도 봄의 잉태가 힘든 듯 고개 숙여 봄을 돋우려 온갖 힘을 모으고 있다.


비록 노란 산수유 무더기, 물오른 매화를 만나진 못했으나, 인파를 피해 한참 에둘러 섬진강을 동무삼아 내려오면서 섬진강의 미덕을 보게된다. 차 에어콘을 살짝 켤 정도로 더운 오후, 햇볕속에 눈부신 하얀 모래톱을 보였다가 삼켰다가 흘러가는 강물, 옛날 이야기가 묻어있을 것 같은 말간 녹색 물빛이 또한 정겹다. 운전을 하는 중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갈수록 눈길이 자꾸 옆으로 샌다.


이제야 알겠다. 이제야 알겠어. 내게 전하는 말을. 봄소식이 제일 먼저라는 이곳에서 스멀스멀 봄이 먼저 피어오르는 곳은 물 맑은 섬진강, 햇빛받아 반짝이는 저 강물, 저 강바닥 아래임을. 바라보매 마음 속 어느 구석진 곳, 스르르 녹아내리게 하는 봄기운이 저 강물에서 요동치고 있음을.

나는 앞으로 휴식의 일환으로 여행을 할 것이다. 생각하기 위해서 걸을 것이고 쉬기 위해서 걸을 것이다. 버리기 위해서 떠날 것이고, 힘과 정열을 얻기 위해 산으로 강으로 바다로 들어 갈 것이다. 그리고 그속에서 시간을 거슬러 오르며, 위대한 정신을 만날 것이다. 자연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