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Think

가을은 내 마음을 찢는다

강갑준 2004. 10. 12. 10:26

가을의 아침은 맑음과 아름다움을 실어 나른다. 그 속에는 싱그러운 열매와 옹골찬 씨가 자리하고 있다. 엊그제 봄이 왔는가 했더니, 여름이 물러가고, 가을이 지나가고 있다. 저 파란 가을 하늘 뒤에는 하얀 눈을 뿌릴 잿빛 구름의 겨울이 기다리고 있겠지...계절을 몰고 오는 시간의 메아리가 귓전에 쟁쟁히 들린다.


사람들이 그렇게 원하는데도 시간은 멈추지 않고 한결같이 스쳐 지나가며 어김없는 메아리를 일으킨다. 시간이 보내오는 메아리 속에는 수많은 ‘메시지’가 들어있다. 우리는 그것으로 옷을 만들어 입기도 하고, 모자를 만들어 쓰기도 하지요. 경우에 따라 신발이 되어 삶의 험하고 먼 길을 편하게 걸어 주기도 한다.
이처럼 ‘메시지’는 사람에 따라 희망, 용기, 의욕, 근면, 인내, 사랑, 용서 등의 씨가 되어 삶을 꽃 피워 주는가 하면 한편 좌절, 갈등,미움, 싸움, 배신으로 이어지게도 한다. 눈은 있으되, 못 보는 사람이 있고, 머리는 있으되, 경우를 못 가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손은 멀쩡한데 올바로 쓰지 못하며, 발은 성한데 걷지 못하는 살함이 있다. 이처럼 시간의 메아리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데서, 인생의 비극은 시작되고, 시간은 역풍이돼 삶을 찢어 놓는다.

시간은 한결같이 우리들에게 기회를 준다. 고운사람, 미운 사람 가리지 않으며, 있는 사람 없는 사람 차별 않고 우리 모두에게 균등하게 다가온다. 지혜를 쫓는 사람은 그를 잡을 것이며, 구슬땀을 흘리는 사람은 그 주인이 될 것이다.


가을은 산에도, 들에도, 그리고 바다와 하늘에도 또한 우리 마음에도 왔다. 이 가을, 시간이 던지는 메아리의 ‘메시지’는 무엇일까. 해가 떠야 날이 밝고, 구름이 끼어야 비가 온다. 풍성한 열매를 거두려면 그에 따르는 값을 치러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씨를 뿌리지 않고 그저 열매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인과응보는 자연의 법칙이요, 사람이 살아가는 가장 기본적인 질서이며 윤리다. 시간 앞에는 과장도 없고, 위선도 없을뿐만 아니라 거짓도 없다. 시간은 제 걸음으로 제갈길을 가는데 사람들은 시간이 “더디 간다. 빨리간다” 고 투덜거린다.

시간이 적다고 탓하는 사람은 시간이 많아도 탓한다. 그런가하면, “시간이 없어서 할 일을 못했다” 고 말하는 사람은 시간이 남아 돌아도 못한다. 시간이 사람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시간을 속이려 든다. 시간의 메아리는 거짓이 없고 진실하다. 이처럼 우리의 삶 또한 던지면 되돌아 오는 부메랑이다.


싱그러운 바람 부는 산자락은 노란 물감 드린 옷으로 엮어지고, 드높은 하늘엔 맑은 호수가 하얀 비늘 구름을 뿌려 놨다. 이 아름다운 가을의 시간은 그 구름을 타고 지나면서 숱한, ‘메시지’를 메아리에 실어 보내고 있다. 귀를 크게 열어 새겨 들으면 거긴엔 정녕 인생을 보람있게 살아가는 지혜의 샘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슬픈 사람에게는 사랑을, 외로운 사람에겐 기쁨을, 미운 사람에겐 정다움을, 실패자에겐 재도전의 용기를, 좌절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에겐 삶의 의지 같은 것을 키워 가는 동기와 기회가 되는 가을이 되었으면
(사진은 2002년 일본 아소산을 다녀오며 찍은 것이다)


BGM -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소프라노 금주희, 바리톤 김동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