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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Think

냉가슴 스트레스

‘위정자 들에게 한마디’


얼마전 모대학 김교수의 차를 타고 어디로 갈 때다. 앞차가 느닷없이 정거하는 바람에 하마터면 충돌할 뻔했다.“자식, 아무 신호도 없이 정거하면 어떻해”김교수의 욕설이 대단하다.
“이봐, 들리지도 않을 욕설부터 하면 자네 스타일만 구겨지는 것 아닌가” “아니야, 욕이라도 해야 스트레스가 해소된다.”고 답한다. 듣고 보니 그럴듯도 하다.
그러고 보니 벌써 8여년전 모씨가 본인을 찾았을 때의 일이다. 모씨는 내 신변을 알아보기 위해 몇차례 사무실에 왔던 터이라 안면은 있었다. “나도 살기 위해서 이러는 겁니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그는 바쁜 나의 모습에 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 내 말뜻을 물었다.“나는 원래 다혈질인데, 하고 싶은 생각을 글로 써버리면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혈압도 내리거든요.” 결국 내가 글쓰고 말하는 것은 내 생명과 직결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 누구나 불평과 불만을 갖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누구나 다 자기의 불평과 물만을 토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입이 써서 말 안하는 사람도 있고,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어서 말 못 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경우를 사람들은 ‘벙어리 냉가슴 앓는다’고 한다.
우리 민족은 한 많은 민족이라고 한다. 한이란 말처럼 우리 가슴에 와닿는 말도 없는 것 같다. 그저 웃사람에겐 무조건 복종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아 왔고 자기 주장이란 아주 불순한 것으로 여겨 왔기 때문에 아랫사람, 약한 사람일수록 한 많은 생을 누려왔다고 하겠다.
아랫사람이라고 불평과 불만이 없었으랴, 있고도 말 못 하니 한이 될 수밖에,한 많은 세상, 한을 못풀고 죽은 사람...,이런 말이 우리에게 많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한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우리에겐 한 풀지 못하고 죽은 자를 위한 한풀이 굿이 있지 않은가. ‘진오귀’ ‘오구굿’ 등이 그런 굿이란다. 불평과 불만의 소리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소리다. 그 소리마저 못한다면 불평과 불만은 쌓여서 한이 된다.

정치란 무엇이냐, 국민의 불평과 불만을 풀어 주어 맘 편하게 살게 하는 기술이다. 말하자면 살아서 한풀이 하는 굿이 정치라고 하겠다. 그러니까 정치가란 국민의 원한을 사는 일을 해서는 절대로 안된다.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마치 어린아기의 울음소리와 같은 소리를 많이 듣게 된다. 이곳에서 우는 소리, 저곳에서 싸우는 소리, 온갖 소리가 다 들린다. 그런 소리를 재빨리 듣고 달려가 그 원인을 알고 소리를 진정시켜 주는 것이 정치가의 할 일이다.
국민은 살기 위해서, 또 보다 더 잘 살기 위해서 불평한다. 불만을 품는다. 그런데 한국에선 정치이외에 간접적이나마 국민의 스트레스를 해소시키 주는 길이 없다. 사람은 스트레스를 해소 해야 산다. 불평과 불만의 토로는 살기 위함이다. 이것을 눌러 없애려고 하느니 보다 그대로 방임해 두면서 하나하나 해소시켜 주는 것이 현명한 정치가의 할 일이다.

간접적이기는 하나 국민의 스트레스를 해소 시켜주는 방법이 하나 있다. 그것은 뜻있는 지식인의 현실비판이다. 우리는 이따끔 신문 사설에서 10년체증도 가라앉는 통쾌한 글을 읽는다. 가슴에 쌓였던 한을 대신해서 풀어주고 있다고 느낄 때가 많다. 그러므로 위정자는 지식인이 하는 현실 비판의 소리를 감사한 마음으로 귀담아 들어야지, 규제, 억압하는 것은 이중의 과오를 범하는 것이 된다. 비판, 사상의 자유, 그것은 자기는 물론 남의 스트레스까지 해소시켜 주는 좋은 방법이다.
국민의 스트레스는 남이 간접적으로 해소시켜 주는 것보다 자기자신이 직접 해소해야 좋다. 문제는 스트레스 해소가 자유스러우냐 아니냐에 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