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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Think

따뜻한 겨울


올겨울은 따뜻하다. 1월 하순인데도 한겨울 추위를 느낄 수 없다. 연일 기온이 높고 눈다운 눈도 구경할 수 없는 포근한 날씨다. 문득, 겨울철에 눈이 안 내리면 꽤나 쓸쓸하리란 생각이 든다. 추위가 질색인 이들에게는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 하겠지만, 그래도 겨울은 추워야 제맛이다.한 세대 전만 해도 겨울이면 발이 푹푹 빠질 정도로 눈이 자주 내렸다. 하얀 세상에 동심은 신났고, 겨울방학 그리기 숙제의 단골 소재는 그래서 눈사람과 눈싸움.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일년중 가장 춥다는 소한·대한마저 그 이름이 무색하다. 겨울이 포근해서 서민들이 난방비 시름을 덜고 있지만, 왠지 이 지구가 중병을 앓고 있는 건 아닌지 불안하다.올겨울 이상난동으로 지구촌은 아우성이다. 1월이면 꽁꽁 얼어붙었던 한강은 올해 멀쩡하다. 동해안에선 때아닌 오징어가 풍년을 이뤘다.

나라밖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뉴욕은 근 130년만에 ‘눈 없는 겨울’을 보내고 있고, 캐나다의 유명한 스키장은 올 겨울 눈이 전혀 내리지 않아 개장 65년만에 처음으로 휴업 조치를 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혹한으로 유명한 동유럽 국가에서는 따뜻한 날씨로 겨울잠을 이루지 못한 곰들이 마을을 습격하는 웃지 못할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알프스산맥에서는 나무에 새싹이 패 화제가 됐으며, 이탈리아에선 열대병 말라리아가 되살아났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처럼 ‘겨울철 메카니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근본적인 원인은 지구온난화와 이에 따른 엘리뇨 현상이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엘리뇨는 태평양 적도 해역의 해수 온도가 주변보다 2~10도 정도 높아지는 현상이다. 높은 해수 온도는 대기 흐름에 영향을 주고 온난화를 초래한다. 어느 연구보고서는 늦어도 2100년에는 남한에서 겨울이 사라지고 봄 여름 가을만 계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미 부산에선 그런 징후가 곳곳에서 포착된다. 한겨울 노랗게 꽃을 피운 개나리와 매화는 더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따뜻한 겨울은 실리와 이해관계를 떠나 사람의 정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초등학생이 그린 겨울 풍경에 눈사람 대신 유채꽃이 등장한다면? 왠지 가슴이 막막해진다. 언제가 이땅에서 사라질지도 모를 겨울이기에 가는 겨울이 아쉽기도 하고. “눈이 내리~네” 프랑스 샹송 가수가 불렀다는 그 애절한 음색이 올겨울엔 그저 철없이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