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I Think

바람이 길을 묻거든



봄은 다가오기 전에 소리부터 먼저 냅니다.
겨우내 닫고 있었던 문을 열라고 미리 신호를 주는 것입니다.
녹을 것 같지 않던 얼음이 녹아 흐르고,
필 것 같지 않던 꽃망울이 터지고......,
어둠속에서도 봄은 옵니다.
겨우내 얼었던 땅 속에서 숨을 틔우던 새싹의 입김처럼
조용조용, 그리고 기어이 옵니다.
그러나 여직 내 마음에 봄이 오지 않은 까닭은 무엇인가요?
세상 모든 만물들이 기지개를 켜며 싹이 트는데
나만 컴컴한 땅속에 갇혀 웅크리고 있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모처럼 거울을 봅니다. 많이 변했다는 게 대번에 느껴지지만
어떻게 변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마음까지 비춰주는 거울이 없다는 것은,
그래서 퍽이나 다행스런 일이지요.
만일 우리 앞에 마음까지 비춰주는 거울이 있다면
그때도 그렇게 자신만만할 수 있을까요.

영혼이 적선처럼 어둠이 내립니다.
그리하여 밤.......,
오늘따라 유난히 별빛이 맑은 것은
내 지나온 시절을 한번 돌이켜보라는 뜻이 아닐는지.
그 맑은 별빛에 내 마음을 한번 비춰 보라는 뜻이 아닐는지.
그렇습니다. 한동안 나는 별들을 잊고 살았습니다.
바쁘게 살고 있다는 이유로 밤하늘을 올려다본 지 오래였고,
숨 막히도록 아름다운 별빛이 머리 위에 펼쳐져 있는데도
그저 무심히 지나치기 일쑤였습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그런 것일까요.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해서 세상의 온갖 아름다움에는 무덤덤해지는.
생각해 보면, 내 유년의 봄밤은 밤하늘에 돋아난 별들을
헤아리는 것에서부터 시작되곤 했었습니다.
먹물을 뿌려 놓은 것 같은 바탕에 보석처럼 박힌 별들을 헤아리다가
스르르 잠이 들기도 했었지요.
소피가 마려워 한밤중 잠에서 깨어났을 때,
마당에 내려서서 바짓가랑이를 내리는,
그 잠에 취한 눈으로 우르르 쏟아지는 은빛가루들...,

별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반짝이고 있을 것입니다.
변한 것은 공해로 뒤덮인 하늘처럼
온갖 탐욕으로 가득 채워진 내 마음이 아닐까요.
남보다 뒤처지지 않으려고 애쓰다 보니 여유가 없고,
여유가 없다 보니 초조하기도 했습니다.
갈수록 혼탁해져 가는 내 마음이 느껴져 답답할 때도 많았습니다.
가끔 별이 보이기도 했지만 내 눈에 잠깐 스치고 지나갈 뿐이었지
가슴에 담아 둔 것은 아니었습니다.

별을 보며 미래를 꿈꾸던 유년 시절,
그때의 꿈은 지금쯤 어느 하늘을 헤매고 있을까.
그때의 푸른 꿈이 아직 내게 남아 있긴 한 걸까.
물질에 대한 탐욕으로 혼탁해진
내 마음 어느 구석진 곳에 버려져 있는 것은 아닌지.
이 봄을 맞이하며 나는 또 느낍니다.
인생은 달리기만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멈춰 서서 호흡을 가다듬는 시간도 필요하다고,
그것은 결코 중단이나 포기가 아니라
보다 가치롭게 나아갈 길에 대비한
‘자기 성찰’이라고 말입니다.

오늘밤은 어린 시절 꿈꾸었던 그 순수한 동경의 세계로
한번 걸어가 보기로 했습니다.
세월은 참 빨리 흘러갔고, 그 빠른 세월을 건너오는 동안
나는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았습니다.
오늘밤은 그 잃은 것에 대해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내 본래의 모습, 그리고 진정 내가 꿈꾸던 것들이
무엇이었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