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도 변한다는 세월인데, 뒤돌아보니 이순의 나이가 지나서도 자신을 방기하며 업을 더했고, 그 업만큼 범민하면서 강물처럼 흘러 온 것 같다. 언제나 현명해질 수 있을런지...,
벌써부터 지기 문명에 이질감을 느끼고 구원이라는 화두를 들고 헤매다니다가 성정의 펼쳐진 경주로 불현듯 날아간 것은 우연한 회귀일까? 그 모성적인 자연의 품이 지친 나에게 휴식을 주었는지도 모른다. 지기를 찾듯이 요즘 자연을 찾아다니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던 나날들이 켜켜이 쌓인다.
살아온 날보다 남은 날이 얼마 남지 않은 탓인가. 갈수록 세상이 아름답게만 보인다. 꽃이 곱게 피면 꽃이 피어 아름답고, 꽃이 지면 져서 또 아름답다. 날이 맑으면 기분의 쾌청해서 좋고, 흐리면 그 흐린 날의 우울이 좋고, 비가 내리면 비의 정취가 그렇게 그윽할 수가 없다.
이제 모두 두고 떠나야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데서 오는 아쉬움일까. 하기야, 우리들은 모두 나그네인 것을, 기나긴 여행길에 올라선 나그네인 것을, 가진 것 다 놓고 빈몸으로 하는여행, 아니 몸조차도 놓아두고 하는 여행, 내 몸조차도 우리는 지니고 다니지 못한다. 지금의 내 몸을 보라, 얼굴을 들여다보라, 떠날 때엔 분명 지니고 있었던 그 젊고 싱싱한 몸, 그 아름다운 얼굴을 나는 어디서 잃은 것일까. 지금 쓰고 있는 이 주글주글한 피부는 어디서 누구의 것과 바뀐 것일까.
사진을 들여다보는 뜻이 거기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두고 온 날들, 잃어버린 과거가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곳은 사진밖에는 달리 없는 것이다. 찍힐 때는 오늘이었던, 이제는 가 버린 아득한 날들, 추억이 고운 먼지를 베일처럼 뒤집어쓰고 잠든 마법의 창고, 어루만지기도 하면 금방 먼지를 털고 부스스 일어나는 그리움, 돌이킬 수 없음의 아쉬움, 그리고 아름다움, 사실, 과거가 아름다운 것은 돌이킬 수 없어서 일 것이다. 다시 찾을 수 있고, 돌이킬 수만 있다면 그렇게 아름답지도 않을 것이다. 애타게 그립지도 않을 것이다.
이래서 경주를 찍는 것이다.

벌써부터 지기 문명에 이질감을 느끼고 구원이라는 화두를 들고 헤매다니다가 성정의 펼쳐진 경주로 불현듯 날아간 것은 우연한 회귀일까? 그 모성적인 자연의 품이 지친 나에게 휴식을 주었는지도 모른다. 지기를 찾듯이 요즘 자연을 찾아다니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던 나날들이 켜켜이 쌓인다.
살아온 날보다 남은 날이 얼마 남지 않은 탓인가. 갈수록 세상이 아름답게만 보인다. 꽃이 곱게 피면 꽃이 피어 아름답고, 꽃이 지면 져서 또 아름답다. 날이 맑으면 기분의 쾌청해서 좋고, 흐리면 그 흐린 날의 우울이 좋고, 비가 내리면 비의 정취가 그렇게 그윽할 수가 없다.
이제 모두 두고 떠나야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데서 오는 아쉬움일까. 하기야, 우리들은 모두 나그네인 것을, 기나긴 여행길에 올라선 나그네인 것을, 가진 것 다 놓고 빈몸으로 하는여행, 아니 몸조차도 놓아두고 하는 여행, 내 몸조차도 우리는 지니고 다니지 못한다. 지금의 내 몸을 보라, 얼굴을 들여다보라, 떠날 때엔 분명 지니고 있었던 그 젊고 싱싱한 몸, 그 아름다운 얼굴을 나는 어디서 잃은 것일까. 지금 쓰고 있는 이 주글주글한 피부는 어디서 누구의 것과 바뀐 것일까.
사진을 들여다보는 뜻이 거기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두고 온 날들, 잃어버린 과거가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곳은 사진밖에는 달리 없는 것이다. 찍힐 때는 오늘이었던, 이제는 가 버린 아득한 날들, 추억이 고운 먼지를 베일처럼 뒤집어쓰고 잠든 마법의 창고, 어루만지기도 하면 금방 먼지를 털고 부스스 일어나는 그리움, 돌이킬 수 없음의 아쉬움, 그리고 아름다움, 사실, 과거가 아름다운 것은 돌이킬 수 없어서 일 것이다. 다시 찾을 수 있고, 돌이킬 수만 있다면 그렇게 아름답지도 않을 것이다. 애타게 그립지도 않을 것이다.
이래서 경주를 찍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