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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Think

'조상묘' 잡초 솎아내며 음덕 기린다

'이미지'
지난 3일부터 2박3일간 벌초를 다녀왔다. 태풍 나비 탓으로 날씨가 흐려 아름다운 제주 풍광을 아!하고 느끼지는 못했다. 그러나 '성산일출봉-파도-코스모스-오름'등을 카메라에 담았다. 역시 빛이 없으니, 시원치 않다.
, 이문제 인형 고맙습니다. 건강하십시요.

추석을 10여 일 앞두고 사람들은 조상들 묘를 돌보기 위한 준비로 서서히 바빠진다. 바쁜 일상을 잠시 뒤로 밀어두고 가족과 친지와 함께 자신들을 지금 이 자리에 있게 해주신 조상을 찾아 정성을 들인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가슴 뿌듯한 풍경이다. 벌초 자체는 독특한 풍습이 아니지만 음력 8월 초하루라는 특정한 날을 기준으로 온 집안이 함께 벌초를 하는 모습은 독특한 풍습임에 틀림없다.

벌초는 지역에 따라 청명·한식·추석 절기 등 1년에 한 두 차례 이상 벌초를 하지만 대개 1년에 한번, 즉 보통 팔월 초하루부터 시작해 보름 이내에 벌초를 끝마치는 것이 전례이다. 굳이 이 시기를 택해 벌초를 하는 이유는 여름철의 강한 햇빛과 장맛비를 맞으며 자랄 대로 자란 잡초를 깨끗이 제거할 수 있다는 뜻과 함께 이 시기에 베어낸 풀은 이후 아무리 성장해도 씨앗을 맺지 못하는 쓸모 없는 것임을 파악한 우리 선조들의 뛰어난 생활의 지혜도 담겨있다.

 또한 과거에 우리 조상들이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못해 1년에 한번밖에 치르지 못했던 벌초 풍습이 하나의 전통으로 자리잡았다는 견해도 있다.

 문중 벌초에 참석하지 않은 사람은 ‘조상을 섬길 줄 모르는 무례한 후손’으로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그래서 음력 팔월이 가까워오면 타지역은 물론 심지어는 해외에 나가있던 사람들까지도 팔을 걷어 붙이고 소위 ‘모듬벌초’라고 부르는 성묘에 참가하기 위해 귀향한다.

 은근한 가을 햇살 속에서 굵은 땀을 흘리며 잡초를 제거한 뒤 정성껏 마련한 제물을 차려 놓고 정중하게 배례를 올리는 모습은 인상 깊다. 살아 생전의 불효를 뉘우치거나 혹은 조상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는 동시에 조금씩 잊혀져 가는 조상의 숨결을 되살리며 자신들의 뿌리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는 계기를 선사하는 것도 우리가 벌초를 해야만 하는 이유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벌초 등 제례에 관련된 행사에 여성들의 참여가 드문 편이었지만 급격한 사회변화의 물결에 발맞춰 벌초행렬에 여성들의 참여가 증가하는 것도 바람직한 현상으로 풀이된다.

 조상의 묘 앞에서 함께 정성을 쏟음으로써 사회통합에도 나름의 기여를 하고 있다는 견해도 적지 않다. 벌초시기가 지나면 대부분의 무덤은 깨끗하게 단장된다. 이 시기 이후에 벌초를 하지 않은 무덤인 고총(古塚)이 발견되면 이 땅의 사람들은 후손이 끊긴 무덤이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만약 후손이 있는 데도 벌초를 하지 않은 경우에는 그 비난의 강도는 한층 강해진다. 이 비난 앞에서는 잘 나간다는 국회의원도, 돈 잘 번다는 의사도, 머리 똑똑하다는 박사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조상 앞에서는 누구나 겸손해야 하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필자 고향의 강규삼(70)씨는 “효를 근간으로 하는 이 성묘 풍습은 반드시 참가해야 하고 더욱 장려해야 할 아름다운 풍속”이라면서 “조상의 얼을 제대로 기리지 못하는 인물이 사회나 국가를 위해 어떻게 당당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풀 한 포기 한 포기를 정성스레 베어내던 낫 대신 예초기가 등장하는 등 벌초하는 풍경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아직도 사람들에게 벌초는 한 해의 큰 행사 중 하나인 동시에 돌아가신 조상을 매개로 고단한 삶에 쫓겨 얼굴 보기 힘들었던 가족과 친척이 한데 어울리는 만남의 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