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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Think

흐느끼듯 흔들리는 봄꽃의 속삭임


꽃은 사진가를 만나 추억과 사랑, 여행과 풍물과 생명과 향기를 더하고, 사진가는 꽃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며 화인더 속에 그윽한 향기를 담는다. 그렇게 화향(花香)과 사향(寫香)이 서로 감기듯 피어난다.

나는 풀꽃보다도 산수유꽃을 보면서 봄을 받아들인다. 박목월 시인의 “산수유꽃 노랗게 흐느끼는 봄"이라고 노래한 대목이 특히 마음에 와닿는다. "산길을 가다가 문득 숲속에서 흐느끼며 피어 있는 산수유꽃을 만나보다.” (산수유 中)

식물학적 지식을 때론 박목월의 시에서 얻기도 하고, "동쪽 울타리 밑 국화를 꺾어 들고 멍하니 남산을 쳐다본다"고 노래한 도연명의 당시(唐詩)를 산책하며, 봄흥취에 빠지기도 한다.


조선초기 학자 강희안의 저서 ‘양화소록’를 보며 “1등 매화, 국화, 연꽃, 대나무, 2등 모란, 작약, 파초, 3등 치자, 동백, 종려…” 이렇게 등수를 매기고, “화초는 한낱 식물이니 지각도 없고 운동도 하지 않는다.”고 폄하한 부분을 읽으면서 홀로 흥분하기도 한다. '이것이 괜찮은 분류인가? 식물이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힘들고 눈물 겨운 투쟁을 하는지….' 라고 따지며, 옛날의 꽃전문가와 시공을 교차하는 논쟁도 벌인다.

겁없이 글을 쓰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 그 뒤엔, 글을 쓰면서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던 시기도 있었다. 시간이 더 흘러 돌아보니, 글을 통해서 또다른 무엇을 얻기도 한 것 같다. 글로 잃어버린 꿈을 만나기도 하고, 주춤거리는 삶을 위무하기도 하고….

요즈음의 나를 보면, 언제부턴가 내 인생에서 잃어버렸다고 여겨지는 모든 것을 카메라의 사각 화인더 속에 찾는듯하다. 나는 어릴 때 제주에서 살았다. 어린시절 감자를 신물나게 먹어야 했던 가난의 기억을 회상한다. 감자만 담긴 밥그릇, 끼니 때마다 그걸 꾸역꾸역 먹어야 했던 기억 때문에 나는 오랫동안 감자를 외면했었다. 어쩌다 좁쌀에 쌀이 약간이라도 섞인 밥그릇이 올라와 감지덕지 숟가락을 대면 살살 덮혀있는 밥 아래로 곧 가차없이 정체를 드러내는 감자알.

이렇게 옛고향 풍경을 되돌리다 철컥 걸리는 것이 있으니, 제주방언으로 ‘빌ㄽ’라 불리던 것이 바로 산수유인 것 같다. 가을 되어 탐스럽게 익은 열매. 그 맛은 씁쓸하다. 화인더 속 산수유 풍경 너머, 뒷동산에 올라 그것을 먹던 가난한 시절이 겹쳐지는 것이, 아무래도 나이 탓인가 보다 ….


나의 꽃에 대한 관심은 ‘철들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일 때문에 가끔 금정산을 드나들면서 꽃을 만났다. 약 120회 정도를 다녀 어느 곳에 무슨 꽃이 자생하는 지를 알 정도이니…. 한번 시간을 만들어 철따라 살고 있는 뒷동산에 올라 야생화를 찾는 일도 인생을 살면서 보람을 찾는 일일 것이다.

지난 청명-한식날인 5일, 지기들과 새벽 3시부터 구례 산동을 거쳐 의성 사곡까지 다녀왔다. 주로 산수유를 찾아 나선 길이다. 그러나 올핸 기후탓으로 예년에 비해 한 일주일쯤 봄이 더디어서 아마 다음 주말쯤 절정을 이룰듯하다.


사족을 달자면-, 부산에서 보통 3시간 30분 거리인 산동 마을을 150K 속도로 2시간에 돌파하는 초급속 애마(?)를 타고 갔으니 커브길마다 간이 콩만해지는 느낌 속에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스릴을 누리며, 즐거운 여행(?)을 한 것이다. 산동마을을 나와 의성까지 중앙고속도로를 거쳐 사곡 산수유를 보고, 오후 10시경 부산으로 돌아왔다. 새벽 3시에 시작해서 밤 10시. 게으른 나에게는 오랜만의 강행군이었다. 도착 후 그 애마(?)의 K를 보니 850K였다.


숨가쁜 일정을 달려 산수유와 어우러진 멋진 풍광을 욕심껏 찍었다. '반나절 찍고 흐지부지 돌아왔으면, 한편으론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 도로사정과 고달픈 몸 생각에 주춤했던 마음이, 촬영한 사진을 보며, 욕심내길 잘했다는 생각으로 바뀐다. 반대를 생각케하는 의미있는 날이었다. 여하튼 기분좋은 출사여행이었다.

이 여행에 편의를 제공한 김재용 선생님, 그리고 김문규 선생님, 또한 그렇게 힘차게 차를 운행한 김병환님께 거듭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