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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Think

이 글을 쓰고 중국을 갑니다


새해 첫 외국 나들이다. 중국 상해를 경유 곤명-구향동굴-석림-여강으로. 2일 출발 7일 귀국할 예정이다. 무려 비행기를 왕복 6번을 타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기회가 늘 있는 것이 아니어서, 건강을 추스르며 살아온 삶을 다시 짚어 볼까 한다.

梅花는 어느 곳에
『백운(白雲)이 자자진 골에 구름이 머흐레라 반가운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었는고 석양에 홀로 서서 갈곳 몰라 하노라。』
고려 문신(文臣) 이색(李穡)의 시조. 조선조의 태조가 그처럼 벼슬자리에 부르려 했지만 끝내 절개를 놓치지 않았던 선비의 목소리는 어딘지 고고하고 맑기만 하다。

매화는 고금을 통해 동양에선 시선(詩仙)이나 묵객(墨客)들의 칭송을 받아온 꽃이다。 또 중국은 한 때 모란대신에 매화를 국화로 삼은 일도 있었다。 모란의 농염(濃艶) 보다는 매화의 냉염(冷艶)이 훨씬 선비답게 생각되었는지도 모른다。

한기(寒氣)가 가시지 않은 이른 봄의 꽃으로는 모란이 더 화려해 보인다。 그러나 동양인의 은근한 성미엔 매화의 향기에 더 마음을 준다。 사군자(四君子)가운데 매화를 으뜸으로 치는 것도 그런 은근함에의 매력때문일 것이다。

중국 북송(北宋)의 시인 소동파(蘇東坡)도 매화를 노래한 일이 있다。 『때를 씻고 씻어 흰 살더미가 보이네 가슴에 맺힌 마음, 말끔히 사라졌네(梅花)。』 그런 감상은 『매천부(梅川賦)를 읊은 정도전(鄭道傳)의 마음에도 이어지는듯, 그는 매화를 두고 이렇게 노래했다。『 미녀와 같이 살갗이 희고 옥(玉)과 같은 얼굴에 몸도 풍만하네。 표연히 몸을 날려 은하수에 떠있는 것같고, 군선(群仙)의 어깨 위에 춤추는 것같다-。』

매화는 일명 매실(梅實) 나무라고도 한다。 낙엽활엽(落葉闊葉), 교목(喬木)。 이른 봄에 백(白) 혹은 담홍색(淡紅色)의 꽃을 피우며 핵과(核果)의 열매가 열린다。 전남북, 경남, 충남, 경기, 황해도에 분포되어 있다。 일본(九州), 대만, 중국대륙의 남쪽 등에서도 볼 수 있다。 요즘은 매실주(梅實酒)등으로 우리의 일상(日常)에선 그 실용도를 더 치는 것 같다。 정원수(庭園樹)로도 격조높은 것은 물론이다。

『담 모퉁이에 두서너 매화가지 추위 속에 홀로 피어 있네 멀리 보면 눈은 아닌 듯, 그윽한 향기가 마음을 적시네』(牆角數枝梅 凌寒獨自閑 遙知不雪 爲有暗香來)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꼽는 왕안석(王安石)의 유명한 매화송(梅花頌)이다。「눈속에 홀로 피는」 습성하며 발딱하지 않는 그윽한 향기하며...。 매화를 선비들이 더 없는 벗으로 생각하는 것은 그런 은둔자적(隱遁自適)하는 생태때문 일 것도 같다。

오늘 신문지상에서 매화가 방실하게 피어있는 사진 한 장을 보며 문득 그런 매화에 일말의 향수(鄕愁)같은 것이 느껴진다。
속진(俗塵)이 분분(紛紛)한 가운데 제주도의 어디에 피었다는 화신(花信)은 사진만 보아도 청향(淸香)에 젖는듯。 소동파(蘇東坡)는 강호(江湖)에서 그 매화의 암향(暗香)을 뱃속에까지 채우고 살았다지만 우리의 어설픈 일상(日常)은 다만 그 화신(花信)으로도 감회가 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