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 물러서서 바라보면 눈앞에 펼쳐지는 산은 사계절을 빌러 크게 변하고 하루에도 십이 시(時)를 도와 잠시도 쉬지 않는다. 그 변화무쌍함으로 인해 그곳은 언제나 피안(彼岸)이다. 그러하기에 산중에는 눈으로 볼 수 없는 마음의 보물이 있을 것이다. 산간(山間)의 맑은 바람이 그러하며 산중의 푸른나무가 그러하다. 모이고 흩어지는 냇물과 빛의 흐름으로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기암괴석이 숨을 쉰다.
그래서 사람은 산중에 의탁하고자 그곳으로 향한다. 산중으로 향하는 이는 발걸음마다 바람을 두고 시원한 계곡에서 마음을 쉰다.어느새 산문(山門)앞이다. 산문 앞까지 아직 버리지 못했던 생각이 종횡(縱橫)들을 옷깃속에 황망히 구겨넣고 일주문 기둥만큼 단단히 여민다. 그러나 아닌 척 감싸 안은 세간의 일들도 천왕문을 지키는 사천왕의 큰 눈을 피할 수는 없다. 천왕문 앞에 서서 옷깃 속에 여며 넣은 두서없는 생각들을 산문을 지키는 사천왕에게 고스란히 내어준다. 내가 못한 일을 남이 해 주는 셈이다.
산문 앞까지 길은 하나가 아니었을지라도 천왕문을 들어서서 산중 깊은 곳까지 외길이다. 산문 밖에 흩어져 있던 세간의 마음을 차곡차곡 접어 옆길로 밀어내려 산중으로 다가선다.도량경계로 들어서서 시중의 복잡한 생각을 접고, 오직 진리의 길 하나만을 밟는다.
산문으로 들어선 이들은 모두 수행자가 된다. 산중에서 산을 보는 이들이 바로 수행자이며, 바람을 맞으며 그 바람을 볼 수 있는 눈을 찾는 노력이 바로 수행이다. 그러므로 산중을 찾는 중생들은 수행자를 통해 부처를 본다.국 한 술에 배부를 리는 없겠지만 한 수저만으로도 그 맛을 알 수 있으니 산중의 하루를 빌어 그 향을 얻음으로 평생의 수행을 엿볼 수 있다.그것이 중생이 산문을 찾아 산자락을 밟는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