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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Think

'白頭山을 다녀 왔습니다.'


다시 찾은 민족의 靈山 白頭山
蒼空은 반기고, 天池는 마음을 끌고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침묵하고 만다. 그냥 아득해지고 막막해진다. 백두산을 찾아 가기전 눈을 감고 마음을 가다듬은 다음 백두산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지난 6월 21일 출발에 앞서 2001년 6월 수행취재시 그렇게 가고 싶고 보고 싶던 백두산을 찾았던 그때를 다시 생각해 본 것이다. 오전 11시 45분 출발 예정인 중국 민항기는 부산 지방의 일기 탓으로 오후 2시에 김해공항을 이륙, 심양을 거쳐 오후6시 10분경 연길에 도착, 버스로 이동, 이도 하백 ‘신달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백두산하면 우리에겐 가보고 싶도록 그리움에 사무치는 민족의 영산이다. 나는 관찰자로서 생각하고 느끼고 무엇이 그렇게 우리를 사모하게 하고 있을까 하고 그 먼 거리를 찾아 가는 것이다. 여정의 대강을 적으면 한마디로 정말 힘든 일정이었다.



서파로 불리는 백두산 서쪽을 찾아가는 길은 비포장으로 덜커덩 덜커덩 10시간여 버스를 타고 갔으니, 말이 백두산이지, 죽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한 사람 내놓고 불평 않는 것을 보니 백두산이 얼마나 사무쳤으면 저렇게 고통스럽게 견딜까 하여 신기할 정도를 넘어 자랑스럽기까지 하였다.
다행히 우리의 마음을 알았는지 하늘은 뚫렸고, 조금만 조금만 하며 보고픈 마음을 끌어 그 험한 산 벽을 내려 천지에 도착하는 기쁨을 맛보았다. 천지 물을 만나 묵언의 합창, 정말로 가슴을 뭉클케 하며 입을 다물게 하였다. 흥분, 감동, 놀램 그 순간이었다.



일주일간 여정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번 백두산을 찾아가는 목적은 명소를 찾아 사진을 취재하는 것이었다. 서파로 올라 천지를 앞에 두고 일출을 보아 뭉클한 감동을 느꼈고, 북파 천문봉 ‘천지’를 만났고, 고 김정구 선생의 노랫말에 나오는 두만강(도문)을 찾았다. 선구자의 땅 용정, 혜란강, 흔적만 남아 있는 일송정을 보았고 그리고 반일의 선봉에 섰던 대성학교를 찾아 윤동주를 만났다.

나는 관찰자이다. 그리고 연변(조선족)의 실상, 백두산이 우리에게 무엇을 주고 있는지를 르포 형식으로 현장 사진과 함께 취재하는 일은 그리 쉽지 않았다. 그러나 현재까지 발표되지 않은 피사체를 카메라에 담으려고 노력했고 사실에 입각한 여행기를 엮을 것이다.

백두산을 관광하러 가는 사람들은 주로 여행사를 통해 간다. 그러나 백두산 천지는 날씨가 받쳐 주지 않으면 볼 수 없다 그것도 20여분 지프차를 타고 가 주어진 시간 30분 만에 돌아봐야 한다. 하루에 2만 명이 넘는 관광객들이 백두산을 찾는다. 그중 한국 사람이 70%이다.

이곳 백두산 아래 숙박 시설은 6월초 순부터 9월 중순까지 성수기라 방이 없을 정도로 호황이다. 그러나 서비스는 제로에 가깝다.
이곳 주민들, 백두산 때문에 돈을 벌기도 하지만 점차 순수함을 잃어 가는 것 같아 씁쓸함 마음을 금할 길 없다.

白頭山은 天池를 보러 가는 것
山勢는 한라산, 雪嶽山 보다...?


백두산은 한반도의 등줄기 백두대간의 출발점이자 송화강과 압록강, 두만강의 시원이 되는 천지를 품은 민족의 성산(聖山)으로 한민족 개국신화의 배경이기도 하다.

중국 옌지(延吉)에서 자동차로 4시간, 용정과 이도 백하진을 거쳐 달리다 보면 차창 밖 풍경은 자작나무와 전나무, 미인송이라 불리는 소나무들이 쭉쭉 뻗은 숲이 펼쳐진다. 그러나 수목 생장 한계 지점인 해발 1700m를 지나면서 풍경은 키 작은 관목과 풀 일색으로 바뀌게 된다.

해발 1950m 지점에 있는 천지 대문에서 입장료를 내고 30분을 더 달리면 장백 폭포를 배경으로 호텔과 산장 등이 즐비한 백두산 자락에 닿는다. 등반객을 제외한 관광객 대부분은 이곳에서 중국 당국이 운영하는 6인승 지프를 타고 20분간 구불구불한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백두산 정상 바로 아래 주차장까지 가는 길을 택한다.



주차장에서 불과 150m 위가 천지가 내려다보이는 천문봉이다. 관찰자가 이곳을 찾은 22일과 23일, 백두산에는 천공이 보였다, 비가 왔다 하는 변덕스러움을 보였다. 그러나 관광객들은 아랑곳 않고 안개가 몰려왔다가 벗어지고 하는 것은 뒤로 한 채 백두산 정상에 올랐다. 백두산에는 성수기 때 하루 최고 200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몰려온다 한다.

천지를 병풍처럼 둘러싼 봉우리 중 5분의 2는 중국이, 나머지는 북한이 관할하고 있다. 그래서 중국 쪽에서 북한 쪽에 있는 장군봉(2,750m)을 바라보는 한국인들은 누구나 북한 쪽에서 천지를 내려다 볼 날을 그린다.

중국은 60년대에 백두산 일대를 보호구역을 지정하고 80년대에 들어 외부에 공개했다. 현재 천지와 백두산은 특별 행정기관인 ‘장백산 보호구’에서 관리하고 있다. 이들은 관광 사업을 위해 천지문 입구에서부터 정상인 천지까지 상하 2차선 시멘트 포장도로를 놓았고 백두산 상 바로 밑에는 산을 평평하게 깍아 주차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모텔씩 산장을 짓고 있다. 하루 숙박비로 한국 돈 6만원을 받을 것이라 한다.
주차장 한쪽엔 돌과 벽돌 몇 장을 쌓아 만든 간이 쓰레기장과 간이 화장실이 있어 바람이 불면 악취가 풍긴다. 주차장에서 천지까지 적당히 발 디딜 곳을 깎아 만들어 놓은 언덕길 역시 흙이 짓밟혀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6월 첫째 주부터 9월초까지 한여름 성수기에 백두산을 찾는 관광객 수는 약13만 명(한국인 70%), 1인당 천지 입장료와 지프 승차 요금을 합하면 중국돈 140위안(약 2만1000원)으로 여름철 천지 관광 수입은 입장 수입만 중국돈 2000만 위안 (30억원)이 넘는다. 중국으로선 큰 수입원인 셈이다.

이렇다 보니 중국 당국은 관광 사업을 통해 한 푼이라도 벌어들이려 하고 현지인들은 한국인 관광객에게서 ‘대박’을 기대한다. 터무니없는 바가지가 씌워지기도 한다. 산과 사람의 관계가 만드는 역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