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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Think

우포에 가면 그리움과 희망이 보인다

“가시연이 하얀 꽃술을 들 낼 때는 생명을 다한다는 것이죠” 이곳 환경 감시원의 말이다. 개똥철학이다. 무섭다. 오랜 경험이 하나의 신념으로 굳어져 뱉어낸 소리다. 그리고 ‘가시연을 찍으러 늪에 들어가면 벌금50만원 물어요." 거침없이 말한다. 완장이 의무를 다 한다는 말인것 같다.


지난 4일 다시 우포를 찾아갔다. 며칠 전 모 TV의 환경 스페셜 ‘우포늪’ 프로그램에서 새벽녘 어슴푸레 피어오르는 물안개를 보았다. 뭐랄까, 생성과 소멸, 생명과 죽음까지도 무색하게 만드는 자연의 위대함에 저절로 경건해지는 느낌이었다. 다시 말해 신비로웠다.
그 물안개를 헤치며 큰 기러기와 청둥오리 떼가 유유히 헤엄치고, 붉은 해가 주춤주춤 떠오르기 시작하는 화면을 봤을 때 지난 삶을 모두 풀어내는 느낌이 와닿았다. 한 폭의 수묵화였다. 그러나 그러한 풍경을 만나기란 정말로 쉽지 않다.
왜냐하면 물안개는 밤과 새벽의 기온 차가 나지 않으면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사진작가들이 그런 장면을 찍기 위해 청송 주산지를 찾는 것도 밤기운과 아침의 기온 차가 심한 그곳이 적격이기 때문인지 모른다.


어떻든 그 화면에 홀려 다시 우포늪을 찾아간 것이다. 가을 길은 초록빛 융단이 가을볕에 익어가고 풀벌레 소리가 이른 아침인데도 가을이 깊어감을 알렸다. 지난해도 우포늪 가시연이 멸종위기라는 말이 나돌았다. 올해 각 자치단체는 연꽃 축제를 알리면서 가시연을 함께 볼거리로 제공한다는 뉴스를 가끔 읽었다.

그러나 인위적 토양 속에 생육된 것과 자연 생태적인, 늪의 가시연하고는 생김새가 매우 다르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또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심성을 바꾸어 버린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 줄무늬, 초록을 깔아 바가지를 형상화한 잎사귀, 잎이나 꽃, 줄기까지도... 자기를 지키려는 보호 본능이 그것뿐이랴, 그 가시 연위에 사뿐히 앉아 가을의 노래를 부르는 잠자리, 가시 마디를 이어 엮어 놓은 거미줄의 아름다움, 다 자연 습지에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지인들과 찾아간 우포늪은 그렇게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드높은 가을하늘하며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는 벼 등, 다 이런 것들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환경은 나빠지는 것 같았다. 군데군데 숨겨 놓은 낚배 등,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가시연이 이미 멸종 단계에 있다, 이곳 우포늪 가시연도 언제 사라질지 안심할 수 없다는 느낌이 든다.

이런 명소를 매체에서 보도를 해대니, 너도나도 이곳을 찾아 가는 사람들은 자연히 많아 질 것은 뻔하다. 우리의 좋은 것을 알리는 데만 급급할 것이 아니고 보호하는 입장의 신중한 보도가 당연히 따라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이런 명소를 정책적 보호가 되도록 법제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못해 관련된 지방자치단체에서 한두 사람의 공공 근로 형태의 감시원을 파견할 것이 아니고, 정규직 공무원이 항시 파견되어 환경을 안내하고 감시하는 관리 체계화가 돼야 한다는 것을 지적해두고자 한다.


이 가을에, 가을 숲에 들어가 생각을 모두 풀어 버리고 그 냥 망가지고 싶다. 끌고 온 고통도 껍질 벗겨 쪽물들 가을에 말리고 싶다. 헌데 구름이 느닷없이 내려와 산과 들과 도시를 비질한다. 그러나 저 먼 곳에 도사리고 있는 소나기도 가을 속의 쓸쓸함을 쓸어 가진 못한다. 가을이 깊어 갈수록 아픔 떨구고 벌거벗은 당신들. 그래서 가을은 위대 합니다.


가을은 눈물겹다. 밤새 몸을 뒤척이는 풀벌레 소리, 찌르 찌르찌 찌르르, 밤의 적막을 찌르고, 쓰르 쓰르쓰 쓰르쓰, 밤의 살을 쓰다듬고, 울음인 듯 노래인 듯 그리움을 깨우치는 절창, 젖은 별들 구름 뒤에 숨어서 귀를 열고, 날개 없는 사람들 꿈속에. 어둠 속에 하얀 배를 띄운다. 가을, 이 지독한 불면을 향해.

이번 동행한 지인은 홍덕기 미전작가 회장님, 김문규 동대사회교육원 지도고문, 강현덕 교수님, 오정복 여류사진작가님 이었습니다.
고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