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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Think

장미꽃 추억


장미를‘꽃의 여왕’이라고 하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그래서 스코틀랜드의 유명한 시인 로버트 번즈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내 사랑은 타오르는 붉은 장미꽃/
유월의 대지 위에 싱싱한 모습/

나는 유년시절 부산 영도에 살았습니다. 봉래산(옛 지명, 고갈산)이 있고 산기슭로부터 펼쳐지는 영선동이라도 부르는 동네가 있습니다. 그곳은 피난민들이 집단적으로 모여 살던 동네인데, 그들은 붙박이처럼 또닥또닥 붙은 집에 살았다는 기억이 납니다.
어쨌든 그때 그 영선동 피난민촌 곁에 한성초급대학(현 경성대학 전신)이 기독교 라디오방송과 함께 있었는데, 어찌나 정원을 아름답게 가꾸었는지.가끔 산책나들이로 들렀든 기억이 납니다. 한 여름에 장미가 정원에 만발했을 때 장미꽃 향기는 나이가 든 오늘날까지도 잊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장미꽃을 보면 향기를 맡아보는데 그때의 향기가 되살아나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셸리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부드러운 목소리 안 들릴 때는/
그 가락 추억 속에 흔들리지요./
사랑스런 오랑캐꽃 시들 때면/
일깨워진 감관 속에 그 향기 잃고/
장미꽃 시들어 떨어질 때면/
꽃잎 모두어 님의 침상 꾸미죠./
그대 가시면 나 그대 그리며/
사랑을 고이 잠들게 하리./

나는 영선동에 피난 온 이북 사람집에 세들어 신혼살림을 살았습니다. 그 주인은 인품이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래채에 살고 있는 우리와는 가까이 지내, 허물없이 지냈습니다. 집이 고급스러워 담장에 장미꽃이 한창 필땐, 운치를 더해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언젠가는 한번 그집 딸인(미희라고 기억) 화병에 장미꽃 한 가지를 꺽어 꽂아서 우리집에 건네 주었습니다. 거기에는‘이것이 우리 집담장에 핀 장미입니다.’라고 적힌 종이쪽이 있었습니다.

비록 장미꽃 한 송이였지만 그 일을 지금도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순간은 영원으로 연결되는 것, 무슨 필름광고 같지만, 한 순간은 영원한 것 같습니다. 나에게 꽃 한송이를 보내준 그것이 내 뇌리속에 계속 머무는 것같이 말입니다. 그 추억은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추억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영원한 것이기도 합니다.

장미는 꽃의 종류도 많고 빛깔도 여러 가지입니다.붉은 장미도 있고 핑크빛 장미도 있습니다. 나는 영시(英詩)를 좋아해서 늘 영시집(英詩集)을 뒤지는데 거기에 나타난 장미에는 흰 빛깔, 노란빛깔, 심지어는 흑장미까지 여러종류가 있습니다.
19세기 존 보일 오라일리라는 시인이 있었는데 장미를 노래하면서 이렇게 읊었습니다.
붉은 장미는 정열을 속삭이고/
흰 장미는 사랑을 숨쉬는 이/
아주 아름답고 멋있는 표현이지요.

장미는 꽃나무 중에서 가장 오랜 것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꽃도 아름답고 잎도 보기 좋습니다. 하지만 장미꽃에는 가시가 있습니다. 이 가시가 흠인지 자랑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아는 독일의 시인 릴케(Rainer M. Rilke, 1875~1926)는 장미꽃 가시에 찔려서 죽었다고 합니다.장미 가시에 찔린 상처 부위에 무슨 독이 들어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릴케가 장미 가시에 찔려 죽었다는 이야기는 무엇을 먹다 죽은 것보다는 좋은 인상을 주는 것 같습니다.“저 사람 왜 죽었느냐?” “너무 먹어서 죽었대.” 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시인답게 죽은 것 같습니다.

호모(Homer.BC 900~800.그리스의 시인)의 시<일리어드(ILiad)와 <오딧세이(Odyssey)>에도 장미가 언급된 것을 보면 장미는 상당히 역사가 오랜 꽃인 것은 확실합니다. 네로(Nero,37~68.로마 제5대 황제)나 클레오파트라도 많은 돈을 들여서 장미를 재배했다는 역사적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역사적 인물들도 장미를 사랑한 것 같습니다.

네로가 장미를 사랑했다는 것이 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만, 그러나 그도 사람인 이상 장미를 사랑한 것만은 분명합니다. 네로 황제는 아무래도 정신분열증에 걸렸던 사람 같습니다. 그는 클라우디우스(Claudius.BC 10~AD 54.로마의 황제) 1세의 양자로 들어가 클라디우스 황제가 죽은 후 제위를 승계했는데, 늘 불안하게 살았답니다. 난폭한 사람 중에는 불안한 사람이 많습니다. 아주 거칠고 폭력적인 사람이 내적으로는 아주 불안정한 법입니다.

정신 불안정했던 네로는 자기를 낳은 어머니까지 살해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아내였던 옥타비아도 죽여버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로마를 불지르고 눈물을 흘리며 쾌감을 맛보았다고 합니다. 불타는 로마를 내려다보며 시상(詩想)이 떠오르기를 기다렸다고 합니다.

그 후 반란이 일어나서 네로 자신도 결국 자살을 하고 말았지만, 그는 스스로가 시인, 예술인으로 자처하기도 했습니다. 죽을 때도 “내가 죽으면 위대한 예술가가 사라진다”라고 소리치며 죽었다고 합니다. 그는 과대망상증이 심한 환자였습니다.

글을 쓰다보니, 엉뚱한 상상이 이어져, 장미에 얽힌 역사를 쓴 것 같습니다. 부산엔 이때쯤, 유엔묘지에 가면 색색이 다른 장미가 꽃을 피웁니다. 6.25 참전국들이 우리나라에서 전사한 자국 병사들 묘에 자국의 장미를 심었다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선지, 옛 영도 살던 곳의 장미가 그립습니다. 나는 생각합니다. 그곳에 자란 장미가 지금도 있을까. 그 집 식구들 안부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