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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Think

금정산...역시'좋다'

요즘처럼 세상이 재미없을 때 선뜻 찾아갈 수 있는 곳은 저만치 있는 금정산(부산)이다. 수목이 자라고 맑은 공기가 흐른다. 온갖 이름모를 새가 천연스럽게 울어대고 시원한 바람도 가지끝에서 불어온다. 맑은 햇살과 싱싱한 숲 향기, 그리고 태고의 신비가 파랗다. 이렇듯 산에는 때 묻지 않은 자연이 있고, 억지가 없는 우주의 질서가 있다. 그러니 시정(市井)에서 닳아지고 얼룩진 몸과 마음을 쉬려면 한적한 산을 찾게 된다.

토요일 금정산을 올라보니 줄 곧 느낀 것은 예전 금정산이 아니라는 사실, 요즘의 금정산은 휴일만 되면 아픔을 더하면서 허물어져 가고 있었다. 금정산은 아파서 아파서 신음하고 있었다. 그 품안에서 생명력을 갖고 있는 것들이 가릴것 없이 병들어 시들고 있다. 말인즉‘자연보호,’운운하지만, 본래 있는 그대로 놔두어야 하는 것이 자연보호이다. 그것을 보호한답시고 결과적으로 파괴하고 있으니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병든 문명에서 벗어나 쉴 수 있는 마지막 안식처 마저 훼손돼가는 것을 보고 자연 그대로를 지키고 가꾸는 일이 긴요하다.
왜냐하면 칠하고 발라놓아 반들반들한 문명에 식상이 되어 길을 떠난 나이기 때문에, 닦이지 않고 손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품에 안기고 싶은 것이다.

금정산에 오르면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온 듯한 정다움과 푸근한 생각으로 하여 겹친 여독도 말끔히 가시는 것 같았다. 산을 찾는 것은 산이 거기 그렇게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 산에는 푸른 젊음이 있어 손짓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묻지 않은 사람과 때묻지 않은 자연이 커다란 조화를 이루면서 끝없는 생명의 빛을 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살고 싶다. 그런 금정산에 돌아가 살고 싶다.

‘금정산’에 가면 정신이 맑아지고 마음이 투명해지며 자기 분신의 삶의 질서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흙에 뒤 쌓인 가랑잎을 밟으며 아침 햇살에 숲길을 거닐면, 문득 나는 내 몫의 삶을 이끌고 지금 어디쯤에 와 있을가를 헤아리게 된다. 내게 주어진 시간을, 한번 지나가면 다시 돌려받을 수 없는 그 세월을 제대로 살아왔는가를 돌이켜 볼때 나는 우울하다.

-時流-

“요즘 명함을 받아보면 앞면이 모자라 뒷면까지 무슨무슨 자문위원이니 등등....., 빽빽하게 씌어진 경우를 보는데 그럴때면/명예(名譽)란 풀잎 끝의 이슬이요, 바람속의 등불이 감투”라고 하신 성철스님 말씀이 떠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