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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갑

마음의 고향...제주도(3) 용눈이 오름에 안개가 자욱하다. 오름에 오르며 보이는 용눈이 오름속 '작은 오름' 그안에 묘지가 있었다. 지금은 이묘하고 없다. 그러나 그 흔적은 남아 있다. 보면 야 ! 명당이구나하고 생각했었다. 오름을 탐방하는 객들이 있어 외롭지는 않겠다했는데. 몇년전부터 이 묘가 보이지 않았다. 후손들이 이 묘가 오름객들에게 오르 내리며 이묘 한 걸까? 묘를 설치할때는 지관을 데리고 다니며 명당이라 묘를 모셨을 터인데 지금은 흔적만 보이니... 더보기
마음의 고향...제주도(2) 고향엔 부산 뜨거운 연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용눈이오름을 둘르고 돌아 앉아서 오름과 더불어 나이를 먹어가는 ...올레 1코스 시흥마을 또, 나의 유녀시절 뛰놀던 시흥포구, 밤 산책을 하다보면 포구안에 길게 닺을 풀어 드리웠다. 파도가 배개를 흔든다. 밤은 깊어가도 잠이 안 온다. 내가 이제 몇살인가? 자꾸만 외롭다. 자꾸만 그립다. 옛날 이 지금쯤은 김이 무럭무럭 나는 감자등 얼마나 풍부하던 고향이었노? 하루가 또 흘러간다. 진정 인생이란 흘러가는 것. 고향엔 상자지향, 여러대의 조상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나도 이곳을 생각하며 그 고향에 자주 가는 것일까? 더보기
마음의 고향...제주도 근래 제주에 자주 간다. 제주 공항에서 바로 용눈이 오름을 경유 시흥포구까지가 나의 길이다. 우선 그 길에는 신호등이 별로 없고 주행속도가 평균 70이다. 신호등이 없다는 단점때문인지 교통량이 많아 지면서 관광객(?)들이 속도를 어겨... 늘 일정한 장소에서 교통들이 카메라 단속을 하고 있다. 나도 70일 넘었을까 할 정도로 속도를 냈었다. 그런데 총을 맞지 않았다. 잘못했다고 생각했다. 속도 70이 내생명선 인 것을 하고 느낀 것이다. 그후 부터는 엄격히 교통법규를 지키고 있다. 그 길을 갈때는 법규를 지키니 마음도 편했다. 그래서 나는 잘못을 느끼며 변화하려고 하다. *용눈이 오름은 고 김영갑이 카메라에 담아 내면서 그 선이 아름답다며 배병우 사진가 등 등이 피사체를 작업하면서 명소로 알려지면서 각광.. 더보기
가난뱅이들의 슬픈비애 가난하게 살면 아는 사람이 없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가난한 사람들’을 읽으면 이런 글을 만나게 된다. “가난뱅이란 호주머니 속을 뒤집어 보이듯이, 자기 자신에 관한 모든 것을 하나도 숨김없이 남에게 보여 주어야만 하게 되어 있다. 절대로 자신의 비밀을 가져서는 안 되게 되어 있다.” 그것이 가난뱅이가 구차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방법이다. 그 모든 것들은 슬프도록 아픈 상처가 되겠지만 달리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그것이 가난뱅이들의 슬픈 비애다. 가난해지면 다정했던 친구마저 발길을 돌린다. 가까운 친척들도 마찬가지다. 입으로는 동종이 말을 숱하게 흘리지만 마음은 어느새 벽을 대하듯이 돌아서 버린다. 참으로 복잡한 시장 한복판에 산다 하더라도 찾아오는 사람은 없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부자는 그렇지 않다. .. 더보기
이곳에 다시 가련다 제주 용눈이 오름, 제주인들은 그저 오름이니했는데, 김영갑 씨는 이곳에 카리라 앵글을 맞춰 세상을 살다 떠났다. 가끔 제주에 갈때 이 오름에 간다. 영화 '지슬'도 촬영을 했고, 펑퍼짐한 둔덕(?)인데 찾는 사람들이 김영갑 효과 탓으로 관광명소가 되었다. 더보기
별을 왜 그리워 할까 별 하나, 나 하나 별이 그립다. 사진을 찍은지 아마츄어때부터 약 30년이 가까워 온다. 그러며... 사진은 혼자 하는 것이다고 느낀지 오래다. 이 사진은 제주 용눈이 오름에서 별을 쫓아 작업한 것이다. 왜 그리 별이 좋은 걸까? 나이들어서 그럴것이다. 더보기
고향산책 신화가 오름과 바다와 함께 춤추는 곳. 요즘도 창작의 샘물을 고향에서 퍼 올리고 있다. 내몸과 영혼을 만들어 준 고향, 늘 오름이 사랑스럽고 그립다. 더보기
언제나 돌아가고 싶은 고향 '오름에서 따뜻한 온기를 느끼다.' 더보기
또 다른 피사체(5) 더보기
용눈이 오름(33)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