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耳順)의 가을은 난감하다
‘사진 스케치’ 지난 24일, 가을을 앓아 집에서 이리저리 뒹굴며, 서재에서 두리번 거리다 ‘파카 51 만년필’과 눈이 마주쳤다. 만년필을 쥐고 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간다. 이 만년필과 오디오 ‘피샤’ 진공관 앰프 등이 나와 삶을 같이 해온 것들이라 이들을 글감으로 한번 끄적거려볼까 한다. 10월의 끝자락. 푸르게 야위어 갈 뿐 물들지 못한 숲, 누렇게 앓고 있을 뿐 여물지 못한 들녘, 우리 너무 쉽게 가을을 건너왔다. 단풍 한 잎, 쌀 한 톨의 무게도 알지 못한 채, 시름의 강가 철 없는 바람처럼, 속절없이 흔들리는 갈대 숲, 비에 젖는 저 처연한 흰손들, 기자 생활 20년에 남은 것은 책상 서랍에 쌓인 각종 볼펜과 잡동사니, 문구류 밖에 없다는 고인이 된 어느 선배의 말이 생각난다. 나 역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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