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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Think

이 글을 쓰고 한라산을 갑니다 한라산 설경입니다. 어느해,겨울, 한라산에 백록담을 처음 찾아가면서 힘든 산행길에 이런 광경을 찍었습니다. '이런 모습도 있구나' 하면서 한라산에 도취한 게 몇년째 입니다. 올해도 이 사진을 올려 놓고 한라산을 갑니다.' 온갖 세상사 잊고 한라산에서 '만세동산. '백록담' 과 이야기를 하며 노루샘 물 마시러 갑니다. 산은 말이없겠죠. 그러나 그 장엄함을 보면 무엇이라하는지 나는 알아듣고 실천할 그런 나이가 됐습니다. 더보기
인생이 夕陽에 서다 모든 길은 석양에 빛난다. 마지막이어서 빛나고, 미련이 남아서 빛난다. 모든 길은 석양에 고독하다. 혼자여서 고독하고, 어둠에 묻혀서 고독하다. 모든 길은 석양에 눈물 흘린다. 누구도 대신할수 없는 존재의 덧없음에....., 더보기
잃어버린 마음의 고향을 찾아서 유년시절, 초가지붕 아래서 살았습니다. 가을이면 노란유자가 얼굴 비비는 소리가 들리고, 비가 오면 빗소리가 실로폰 연주처럼 울려 왔습니다. 지금도 그 곳엔 약 2백여년(?)넘은 동백나무가 우리 집 역사를 말하고 있습니다. 가끔 고향에 가면, 이 나무가 눈에 들어와, 문득 문득 유년시절 생각이 새록새록 납니다. 겨울에도 얼지 않은 샘(공동)에 나가 물을 길어보고, 된장찌개를 끓여 먹던 시간들, 할머님 몫이었습니다. 그렇게 할머니는 많은 고생을 하고 저 세상으로 갔습니다. 지금은. 우물 길던 샘은 간데온데없고, 마을 엔 초가집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 시절 동네 어른들은 대부분 저 세상으로 떠나고 있습니다. 또, 마을을 지킨 ‘멀미오름’은 옛 모습을 간직한 채, ‘올레’란 이름표를 붙이고,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더보기
새해 건강하십시요 새 해, 새 아침, 기지개를 크게 하고 찬란히 밝아 오르는 동녘 하늘을 바라봅니다. 둥글고 큰 태양입니다. 4백만 부산시민이 모두가 용꿈을 꾸었다면 그 얼마나 멋진 새 해가 되겠습니까. 새 해란 언제나 좋은 것입니다. 한 해 동안 간직한, 꿈이 퇴색해버리고 의욕이 사그라질 무렵이면 새해가 다가와서 새 꿈을 안겨 주는 것입니다. 사람이란 어리석게도 죽는 날까지 꿈꾸고, 기대 속에 사는 존재입니다. 아무리 꿈이 꺾여도 우직스럽게 해가 바뀔 때마다 새 꿈을 믿습니다. 이러는 사이에 역사가 바뀌고 사람들이 달라집니다. 달라지지 않은 것은 태양뿐입니다. 그러나 2009년의 새 해는 보기에 따라 밝게도 보이고, 어둡게도 보일 것입니다. 새해 에는 또 몇 번이나 사람들이 웃게 되고, 몇 번이나 더 많이 울게 될지 아.. 더보기
새해 아침에 “인생에서 무엇보다 어려운 것은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사는 것이다.” ‘도스토에프스키’의[악령(惡靈)]이라는 소설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유명한 작가 중에서 ‘도스토에프스키’만큼 인간의 심리의 심층을 깊이 파헤친 작가가 없습니다. ‘죄와 벌’도 그렇고 ‘카라마조프의 형제들’도 그렇습니다. 그는 인생을 가장 깊이 본 작가입니다. 인생에는 어려운 일이 많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사는 것 이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우리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살아가고 싶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양심의 요구입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시’를 노래한 시인 윤동주(尹東柱)의 말과 같이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는 고백이 우리의 순수한 심정입니다... 더보기
한라산을 가야는데.. 삼백예순 날, 달력 켜켜이 고인 추억들, 누런 갈피에 펄럭이는 노여움. 분노, 서랍속에 가두고 새날의 망치로 못질한다. 그전 건강하게, 그저 맘고생 없게. 가난한 소망들, 무자년 밀어내는 세밑추위, 2009년 기축년이 돋는다. 희망을 풀무질하며. 소망이 있습니다. 한라산에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독감으로 앓고 있습니다. 예방주사를 맞았는데. 바이러스가 나에겐 너무 한 것 같습니다. 몇번이나 갈지. 철따라 가고 싶은 곳 역시 한라산 입니다. 더보기
세모(歲暮)에 서서(5) 저녁 밥상 위에 넓적한 생선 한 마리가 누웠습니다. ‘가자미’라고 부른 답니다. 두 눈이 모두 오른 쪽으로 몰아 붙었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세상의 한쪽만을 바라보며 떠다녀야 합니다. 세상 사물의 한쪽만을 어느 한쪽만을 보는 것을 ‘편견’이라고 일컫습니다. 그러니 가자미라는 놈은 편견을 팔자에 타고 난 것이 분명합니다. ‘편견’이란 확실히 칭찬할 때 쓰는 말은 아닙니다. 허지만 “ 두 눈으로 한쪽만을 뚫어지게 본다면, 그 측면에 대한 관찰은 오히려 매우 정확할 것이 아닌가?” 이것은 아마 엉뚱한 상념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하기야 우리 인간도 큰 소리할 처지는 못 됩니다. 누가 세상의 모든 측면을 골고루 바르게 본다고 감히 장담을 하십니까? 사실은 우리네 인간도.. 더보기
세모(歲暮)에 서서(4) 안개가 자욱한 아침입니다. 도심에 내린 안개. 그 안개의 숲을 헤치고 정글 같은 도심 속으로 사람이 들어갑니다. 어떤 이는 웃으며 어떤 이는 피곤한 모습으로, 안개 숲에 자리한 정글을 들어서는 사람들의 표정은 다양합니다. 웃으며 들어서는 사람의 모습은 즐거움을 남기고, 피곤한 사람의 뒷모습은 쓸쓸함을 남깁니다. 어떤 길 위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어떤 순간에도 웃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살다 보면 수없이 만나게 되는 고통, 쓸쓸함 앞에서도 별처럼 밝은 미소로 남을 수 있다면 그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일까요. 삶은 어쩌면 수많은 위험이 도사린 정글과 같을지도 모릅니다. 우리 그길을 웃으며 함께 가는 동행인이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웃음의 동행자, 그런 동행자가 있다면 정글 같.. 더보기
세모에 서서(3) 사람은 일생 중에 생일을 네 번 맞는다고 한다. 첫 번째의 생일은 어머니의 태내(胎內)에서 영아(嬰兒)로 태어나는 때, 두 번째의 탄생은 ‘자아(自我)’를 발견하는 때, 누구나 ‘나는 무엇인가’하는 자문(自問)을 품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청춘의 고뇌(苦惱)란 바로 이런 시기를 두고 말한다. 세 번째의 탄생은 번뇌(煩惱)를 이기는 순간,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 회오(悔悟)하고 슬퍼할 때가 있다. 인생의 고경(苦境)이랄 수 있다. 이런 어려움을 겪고 나면 안심입명(安心立命)의 경지(境地)를 알게 된다. 마지막 네 번째의 탄생은 죽음이다. 자기는 죽어 없어지지만 이름과 덕망(德望)은 남아 있다. 그것을 죽음으로써 새로운 생명을 얻는 것이다. 더보기
세모에 서서(2) 올해도 며칠 남지않았다. 우리에게 주어진 세월의 한 자락이 또 지나가 버렸다. 마치 움켜 쥐었던 모래알이 술술 빠져 나가듯이 세월은 그렇게 새어 나간 것이다. 돌아볼것도 없이, 지나간 한 해는 우리 모두에게 이땅에서 일찍이 없었던 일들을 보고 듣고 또한 느끼게 했었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