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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Think

이순(耳順)의 가을은 난감하다 ‘사진 스케치’ 지난 24일, 가을을 앓아 집에서 이리저리 뒹굴며, 서재에서 두리번 거리다 ‘파카 51 만년필’과 눈이 마주쳤다. 만년필을 쥐고 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간다. 이 만년필과 오디오 ‘피샤’ 진공관 앰프 등이 나와 삶을 같이 해온 것들이라 이들을 글감으로 한번 끄적거려볼까 한다. 10월의 끝자락. 푸르게 야위어 갈 뿐 물들지 못한 숲, 누렇게 앓고 있을 뿐 여물지 못한 들녘, 우리 너무 쉽게 가을을 건너왔다. 단풍 한 잎, 쌀 한 톨의 무게도 알지 못한 채, 시름의 강가 철 없는 바람처럼, 속절없이 흔들리는 갈대 숲, 비에 젖는 저 처연한 흰손들, 기자 생활 20년에 남은 것은 책상 서랍에 쌓인 각종 볼펜과 잡동사니, 문구류 밖에 없다는 고인이 된 어느 선배의 말이 생각난다. 나 역시 그.. 더보기
가을소리가 너무 고요하다 ‘스케치’ 단풍의 아름다움은 해 지기전에 서녘 하늘을 휘황하게 물들이는 낙조와도 비슷하다. 하지만 단풍을 ‘온통 선연한 핏빛 파도’로 보는 것은 편향적 시각이 아닐까 생각될 때도 가끔 있다. 그렇게 속절없이 세월은 가기 때문일 까..., 쓸쓸, 소슬바람이 쓸고 간 자리. 가을색을 끼얹는 빗소리 하염없습니다. 눈 뜨면 울긋 눈 감으면 불긋, 어느새 제각각의 빛깔을 입은 촉촉한 잎들, 빙그르르 빙그르르 짙푸르던 한 생애를 떨구고 있습니다. 거룩한 추락, 핑그르르 핑그르르 나도 몰래 눈물 납니다. 이런 게 삶 아닐까요. 화르르 타오르다 소리 없이 지는. 와서는, 울음빛 쏟아놓는, 환장하겠는, 이 눈물겨운 가을 빛, 빠알갛게 노오랗게, 문지르면 금새 더워오는 빈 가슴, 당신의 두볼에도 한 점 붉은 빛 도는가. .. 더보기
‘依於仁,游於藝’ ‘사진 출처’ 삽입 사진은 지난 3월 선암사 매화, 그리고 5월 보성차밭 입니다. 가을비가 너무 가슴을 휘비고 들어 녹차 한잔에 마음을 갈무리 합니다. 동서고금의 위대한 스승들 중에서 누구를 제일 만나보고 싶으냐고 날더리 묻는다면, 내머리 속에 제일 먼저 떠 오르는 이름은 孔子다. 칸트도 소크라테스도 꼭 접해 보고 싶은 철인들이지만 그러나 내게는 공자가 가장 가까운 인물이다. 중학시절의 내 책상에는 언제나 ‘論語’가 놓여 있었다. 여름방학이면 꼭 ‘論語’를 한번 할아버님의 명령에 따라 읽었다. 아는 대목도 있었고 모르는 대목도 있었지만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의 첫 구절부터 시작하여 제일 마지막 구절‘不知信無以知也’까지를 다 읽고 나면 마음이 후련하였다. 몇 년 몇월 몇일 어디서 第一回讀이라고 ‘論語’ .. 더보기
부드럽게 찾아온 승학산 억새의 ‘하얀 유혹’ 소슬바람 받으며 반짝이는 은빛 물결 으악새 합창과 풀벌레 소리가 가을을 연주한다. 가을산인 승학산을 찾아 나섰다. 흔히 ‘동아대산(東亞大山)’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산. 대신동 꽃마을 지나 비좁은 콘크리트 길을 30여분 지나면서 뿌연 가을 하늘의 승학산을 찾아 나선 산행인들이 가끔 삼삼오오 짝을 지어 오르고 있다. 아직 가을꽃인 억새가 소리를 머금어선지 승학산의 모습은 억새가 장관을 뒤로 하고 있다. 오후가 돼서인지 구름 속에 숨은 해가 가끔 이부 능선의 아름다움을 빤짝이게 한다. 서쪽 하늘로 해가 구름 밑에 숨어들었다. 가을이라기엔 더운 낮 기온에 옷은 축축이 젖어 버렸고, 다리에 휘감겨 찢어진 바지가 살결을 들어내며 움직이기에 힘들 정도이다. ‘아 오늘도 이렇게 하루가 저무는구나!’ 비통한 한숨이 .. 더보기
그대의 외로움이 보입니다. ‘아침의-스케치’ 10월16일 아침 새벽 해운대 바닷가를 거닐었다. 부산 비엔날래 조각들이 반긴다. 무엇을 말하는지? 궁금을 불러주는 그 상들은 할말이 많은 것 같다. ‘어릴쩍 떠 올리는 ’섶다리 추억, 역시 세월 탓일까, 사람이 그리워 지고 보고 싶은 가 보다. 세상을 환희 밝힌 해운대 바닷가 누가 세상을 떠날까요. 우리들은 도시의 어디에 걸려 있나요. 그대의 외로움이 보입니다. 고운 최치운, ‘돌아와요 부산항’ 이런 저런 생각...., 문득 사람이 그립습니다. 가슴을 적시는 해변 풍경, 감성에 이끌리는 사람들, 우리들이 버린 숱한 꿈들도 어디에선가 가을 볕에 익어가겠지요. 그대는 지금 가을 어디에 있나요. 오늘 아침 이런 생각을 하였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벗은 나 자신일지 모른다는 것 말입니.. 더보기
낙엽은 결코 고독하지 않다 나의 아파트 정원에 한 그루의 정정한 백합목이 있다. 여름이면 백합 같은 꽃이 만발한다. 잎사귀는 부채 모양으로서 은행나무 잎사귀만한 크기다. 나는 매일 아침 출근길에 이 나무를 바라본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 따라 여러모로 바뀌는 나무를 바라보고 출근하는 것이 나의 가장 큰 즐거움의 하나다. 나무는 자연의 철학자라고 어느 시인은 노래했다. 한 그루의 나무에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느낀다. 나무를 가만히 관찰하면 인생의 많은 지혜를 터득할 수 있다. 가을은 낙엽의 계절이다. 봄에는 파릇파릇한 새싹이 나고 여름에는 무성하고, 가을이 되면 땅에 떨어져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간다. 탄생과 성장과 사멸은 존재의 대질서요, 자연의 큰 섭리다. 이 세상에 한 생명으로 태어나 7,80년 살다가 낙엽처럼 떨어져 .. 더보기
가을은 내 마음을 찢는다 가을의 아침은 맑음과 아름다움을 실어 나른다. 그 속에는 싱그러운 열매와 옹골찬 씨가 자리하고 있다. 엊그제 봄이 왔는가 했더니, 여름이 물러가고, 가을이 지나가고 있다. 저 파란 가을 하늘 뒤에는 하얀 눈을 뿌릴 잿빛 구름의 겨울이 기다리고 있겠지...계절을 몰고 오는 시간의 메아리가 귓전에 쟁쟁히 들린다. 사람들이 그렇게 원하는데도 시간은 멈추지 않고 한결같이 스쳐 지나가며 어김없는 메아리를 일으킨다. 시간이 보내오는 메아리 속에는 수많은 ‘메시지’가 들어있다. 우리는 그것으로 옷을 만들어 입기도 하고, 모자를 만들어 쓰기도 하지요. 경우에 따라 신발이 되어 삶의 험하고 먼 길을 편하게 걸어 주기도 한다. 이처럼 ‘메시지’는 사람에 따라 희망, 용기, 의욕, 근면, 인내, 사랑, 용서 등의 씨가 되어.. 더보기
한란(寒蘭)이 향기를 듬뿍 나릅니다. 청량한 향기가 진동한다. 천연기념물 171호인 ‘제주 한란’이 두 대의 꽃을 피운 것이다. 날렵하고 윤기가 더한 잎에 불그스래한 ‘자한란(紫寒蘭)’이니, 명품인 것이다. 지인 불러 차 한 잔하고 싶은 것이 심정이다. 30여 년 전 나는 난 애호가(愛好家)였다. 그러나 애란인(愛蘭人)은 아니었다. 어쩌다 무려 150여분을 소장했으니, 딴 사람이 생각하면 별난 취미도 가졌었네. 할 것이다. 난에 대한 전문지식도 없고, 그런 것을 체계적으로 공부한 일도 없다. 그런 과정에서 다만 ‘물주기 3년이라’는 까다로운 지혜를 터득한 정도이다. 그렇게 우리 집 난은 주인을 잘못 만나 시름시름 아파하면서 거의 다 사라지고(?) 지금은 일곱 분 정도가 아파트와 같이 하고 있다. ‘나도 대엽풍란’ ‘소엽풍란’ 일경구화의 ‘극.. 더보기
아득한 추억들이 안개 깔리듯 ‘글과 'D-photo' 스케치’ 10월3일, 봄에 이어,악양 최참판댁과 남해 가천리 다랑논, 그리고 순천만을 다녀왔다. 넓은 평야, 그리고 옥빛 바다 다랑논 굴곡의 절묘한 어우러짐, 넒은 순천만 갯벌이 주는 메시지를 담을 nostalgia의 시간이었다. 시간이 유수처럼 흘러간다는 말이 실감나는 요즘이다. 세상은 급변하고 나 또한 하루하루를 워낙 바쁘게 지내다 보니 도대체 지금 내가 무얼 하며 살고 있는지조차도 모를 지경이다. 꽃이 피었는가 싶더니 그 꽃이 진 지도 이미 오래, 날이 바뀌고 계절이 바뀌는 것도 무감각할 정도로 시간이 쉼 없이 흘러간다. 어떤 때는 더럭 겁이 나기도 한다. 나는 여기 가만히 있는데 시간만 저 멀리 혼자 가 버리는 것 같아서……. 간밤 무서리에 온몸 진저리치더니 코스모스 꽃잎.. 더보기
가는 비에 마음까지 젖다 아주 오래된 이명(耳鳴)처럼. 안으로 안으로 억눌렀던 울음처럼. 뜨락 적시는 가을비 소리. 억새풀 바람에 진저리치고, 짓까불던 참새 황급히 몸을 숨긴다. 찬비 그치면, 무성하던 가지도 겸허히 옷을 벗겠지. 거대한 자연의 순환, 하지만 떠날 길 떠나지 못하는 인간은 얼마나 초란한가. 신열(身熱)삼키며 떨고 있는 코스모스. 가는 비에 마음까지 젖는다. 세월은 빠른 것이다 허리가 구부정하고 얼굴에는 주름이 잡히고 검버섯이 무성한 노인을 보고 젊은이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어쩌다 저꼴이 되었을까'하고. 그러나 저 노인이 옛날부터 ‘저꼴’ 인 것은 아니다. 어떤 노인도 한 30년전에는 다 보기가 괜찮았는데 그만 세월 때문에 ‘그꼴’이 된 것이다. 젊은 사람이면 누구나 자기 나이에 삼십년쯤 가산하고, 그런 나이.. 더보기